너비 1180px 이상
너비 768px - 1179px
너비 767px 이하

기획전시

본문시작

소록도를 일군 사람들

소록도에는 약한 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조금 더 건강한 환자들’이 있었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사람들은 최소한의 배급을 받았고 부족한 부분은 자급자족하며 생활했다. 병사지대의 각종 토목 작업과 물품의 수리·가공뿐만 아니라,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반찬이 될 채소를 재배했다.

‘조금 더 건강한 환자’들은 ‘더 약한 환자’를 대신해 많은 일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건설대(建設隊)’라는 이름도 갖게 되었다.

“건설대의 업적을 통하여 보건대 원내 건설 및 수리, 가공, 공사는 물론 15개소 공장의 합리적 운영과 도내 해안 석축공사와 기타 토목공사, 치도 사업 등 나아가서는 치산치수의 미화 작업을 하기 위하여 도외출역까지도 전담하고 있으니, 실로 6,000 환우의 맥박이라 아니할 수 없다.” (1958년 소록도갱생원 연보, 39쪽 발췌)

하단참고
소록도를 일군 사람들

소록도에는 약한 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었던 '조금 더 건강한 환자들'이 있었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사람들은 최소한의 배급을 받았고 부족한 부분은 자급자족하며 생활했다. 병사지대의 각종 토목 작업과 물품의 수리,가공뿐만 아니라 된장과 간장을 만들고 반찬이 될 채소를 배재했다. '조금 더 건강한 환자'들은 '더 약한 환자'를 대신해 많은 일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건설대(建設隊)'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입원환자 중 중증 및 부자유환자 외에는 입원 전 직업과 기술에 상응한 작업에 종사 하도록 하였다. 작업의 내용은 섬 내 토목공사와 수리,가공 작업(목공,철공,제재 등), 기와 생산, 농작물 재배까지 다양했다. 1947년 5월 환자자치위원회 조직/1954년 환자자치위원회 해산,조무원제도 실시/1954년 7월 19일 환자 건설대 조직/1995년 연보 이후 건설대 명칭 보이지 않으며 현재는 산업반으로 활동

건설대대원 수 변화
1960년 건설대원수 320/입원환자 수 5,184
1975년 건설대원수 80/입원환자 수 3,346
1979년 건설대원수 70/입원환자 수 2,825
1980년 건설대원수 60/입원환자 수 2,690
1986년 건설대원수 57/입원환자 수 1,984
1987년 건설대원수 47/입원환자 수 1,872
1988년 건설대원수 40/입원환자 수 1,745
1989년 건설대원수 30/입원환자 수 1,610
1993년 건설대원수 20/입원환자 수 1,222
2026년 건설대원수 13/입원환자 수 315
건설대의 역사
  • 입원환자 중 중증 및 부자유환자 외에는 입원 전 직업과 기술에 상응한 작업에 종사하도록 하였다. 작업의 내용은 섬 내 토목공사와 수리·가공 작업(목공, 철공, 제재 등), 기와 생산, 농작물 재배까지 다양했다.
  • 1947년 5월 환자자치위원회 조직
  • 1954년 환자자치위원회 해산, 조무원제도 실시
  • 1954년 7월 19일 환자 건설대 조직: 초대 산업부장 박순암
  • 1995년 연보 이후 건설대 명칭 보이지 않으면 현재는 산업반으로 활동
건설대대원수 변화
건설대대원수 변화-연도,1960,1975,1979,1980,1986,1987,1988,1989,1993,2026
연도 1960 1975 1979 1980 1986 1987 1988 1989 1993 2026
입원환자 5,184 3,346 2,825 2,690 1,984 1,872 1,745 1,610 1,222 315
건설대원 320 80 70 60 57 47 40 30 20 13
1967년 통장 이하 조무부서 구성표
하단참고
  • 통장실
    • 마을사무소
      • 마을행정사무
      • 물품배급
      • 부첨인관리
    • 지도부
      • 병사지대공안
      • 업무연결
      • 산림보호
      • 도선관리
      • 전력통제
    • 산업부
      • 건설대동원
      • 각공장운영
      • 공원관리
      목공, 세탁, 정미, 함석, 솜타기, 금속공, 전공, 제재, 연탄, 철공
    • 문예부
      • 도서실관리
      • 유선방송
      • 각종행사
1960년 환자조무원 배치 상황
1960년 환자조무원 배치 상황-부서별,인원수,업무사항
부서별 인원수 업무사항
산업부 106 환자지대 각 공장(목공장, 철공장, 정미공장, 제재소, 연와공장 등)의 운영사항
마을사무소 94 환자동태 사항, 환자물자보급 사항
문예실 6 환자계몽사업 및 도서관리 사항
지도소 100 환자풍기 단속 및 산림보호 사항
의료부 100 환자치료 및 소독 사항
부자유환자 부첨인 483 부자유환자 식사 수발, 기타 생활보조 사항 일제
건설대 320 환자지대 도로보수 및 물자운반, 기타 각 시설 보수 사항
합계 1,209

소록도를 일군 사람들

1945년 해방

  • 1916년 자혜의원 개원 이후 ‘경증자에 대해 체력에 상응하는 작업을 부과’하였다. 주로 중증환자 부첨(附添, 도우미), 논밭 경작, 붕대 감기, 세탁, 목재 수리, 신발 수리, 도배, 치료 도우미, 청소, 이발, 나무 손질, 벌목, 화장장 관리, 목공, 기와공 등의 작업을 했다.
  • 1934년 이후, 대부분의 환자들은 소록도갱생원 확장공사에 강제 동원되어 ‘부지매립, 굴취, 도로공사, 해안석축 공사 등을 수행하였다.
  •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전쟁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송진 체취, 가마니 생산, 벌목과 숯 생산 등에 동원되었다.
  •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입원생활에 필요한 각종 작업은 환자들의 몫이었다. 병사지대의 호안(護岸)·도로·건물·교량·하천의 정비보수는 등 공사는 물론, 자급자족을 위한 각종 공장도 직접 운영하였다.
  • 1978년, 그간 환자들의 작업을 기념하고 감사하기 위해 최초로 환자의 이름을 딴 길에 비석을 세웠다.
  • 실제 연보에 기록된 환자들의 작업은 다음과 같다.
    * 1985년 건설대 및 일반환자 근로활동
    • 1.지도부 앞 해안 석축작업: 길이 23m, 높이 5m, 연인원 1,253
    • 2.지도부 앞 흙 운반 및 식목작업: 52주, 연인원 713
    • 3.장안리 앞 해안 석축보수작업: 길이 98m, 높이 1.2m, 연인원 1,722
    • 4.각 마을 도로변 석축작업 및 도로보수: 석축 72m, 전도로 보수, 연인원 1,433
    • 5.동생리 선창보수작업: 길이 7m, 높이 4m, 연인원 948
    • 6.동생리, 남생리 외곽선도로보수: 길이 2.7km, 연인원 615
    • 7.십자봉도로절목 및 보수작업: 길이 2.4km, 연인원 445
    • 8.새마을 외곽선도록보수작업: 길이 80m, 연인원 120
    • 9.동물사 수도파이프 수리작업: 길이 80m, 연인원 120
    • 10.식량 상하차 및 운반보조: 연인원 1,690
하단참고
해방 전-각자의 작업을 위해 이동하는 환자들/1930년대 여자 환자들의 세탁/동생리 선창과 해안도로 공사/벽돌 생산/목도 운반 작업과 감독 중인 간호수/가마니 짜기/벌목 후 숯 제조 해방 후- 건설대 맨손 작업/제비선창 축조(1968년 추정)/칠공(1967년)/농사(1967년)/어로(1967년)/양계(1967년)/재봉(1967년)/공동작업(1967년) 소록도에서 운영된 각종 공장(1962년)-1.된장공장/2.비누공장/3.타면소/4.연탄공장/5.단무지공장/6.철공장/7.된장공장/8.건설반목공소/9.정미소/10.무력공장/11.취사장/12.제봉소/13.기와공장 노천 작업장(추정)/14.기관장/15.두부공장/16.제재소 순바구길 비석 제막식(1978년)/순바구길 공사 중/순바구길 공사 후

기획전시실 외부 단독 벽

순바구길 비문 사진 앞/뒤
순바구길 이 동산 모든 것이 하나같이 환자들의 손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섬에 병원 개설의 첫 삽을 내릴 때나 다음으로 확장공사가 이루어질 때 도로, 선창, 방파제, 병원, 주택, 창고, 각 작업장의 건축, 공원 조성 등 온갖 것이 그들의 피와 땀, 살과 뼈를 깎으면서 만들어졌으니 이 섬 있는 동안 우리는 그 공로를 잊을 수 없다. 조국 광복 후로는 비교적 건강한 환자로 건설대를 스스로 조직하여 과거 선배들 작품을 유지 관리하고, 새로운 세상에 필요하고 알맞은 일들을 찾아가면서 꾸려나간 것이 오늘날 이 동산의 경관이며 시원히 트인 이 신작로 또한 그 업적의 하나이다. 이제 그 책임자로 50년을 하루 같이 몸을 바친 박순암씨의 아명을 따서 이 길은 순바구길로 짓고, 지도 담당으로 그들과 고통을 같이 나눈 김황기씨의 글씨를 받아 새기고, 그와 그에 따른 건설대 여러분의 노고를 감사하면서 오래 기리도록 이 비를 세운다. 1978년 5월 17일 국립나병원장 신정식

[순바구길] 비문
이 동산 모든 것이 하나같이 환자들의 손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섬에 병원 개설의 첫 삽을 내릴 때나 다음으로 확장공사가 이루어질 때 도로, 선창, 방파제, 병원, 주택, 창고, 각 작업장의 건축, 공원 조성 등 온갖 것이 그들의 피와 땀, 살과 뼈를 깎으면서 만들어졌으니 이 섬 있는 동안 우리는 그 공로를 잊을 수 없다.
조국 광복 후로는 비교적 건강한 환자로 건설대를 스스로 조직하여 과거 선배들 작품을 유지 관리하고, 새로운 세상에 필요하고 알맞은 일들을 찾아가면서 꾸려나간 것이 오늘날 이 동산의 경관이며 시원히 트인 이 신작로 또한 그 업적의 하나이다.
이제 그 책임자로 50년을 하루 같이 몸을 바친 박순암씨의 아명을 따서 이 길은 순바구길로 짓고, 지도 담당으로 그들과 고통을 같이 나눈 김황기씨의 글씨를 받아 새기고, 그와 그에 따른 건설대 여러분의 노고를 감사하면서 오래 기리도록 이 비를 세운다.

- 1978년 5월 17일 국립나병원장 신정식

인터뷰 영상

마치는 글

“이 동산 모든 것이 하나같이 환자들의 손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은 기암괴석, 공원을 가득 채운 갖가지 수목,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오솔길 사이사이에 소록도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있습니다.
소록도는 어느 건설 회사가 만들고 지켜온 것이 아니라 병을 고치려 입원한 수많은 순바구들의 아픈 손발로 하나하나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