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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소록도이야기_녹산초등학교

  • 등록자 :백미영
  • 담당부서 :운영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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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1-09-29

소록도 이야기-녹산초등학교001 하단참고

녹산초등학교

소록도에서 교육이란 문자 해독에서부터 진학을 위한 학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특이한 것은 국가에서 만든 병원이 환자들을 위한 교육에 주도적이기 보다 격리된 환자들이 주도가 되어 소록도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916년 개 원 이래 원생들의 교육은 부분적으로 한학에 조예가 있는 몇몇 원생들에 의해 전통 적 서당교육만이 전부였다. 최초 입원이 시작된 1917년부터 1923년까지 7년간 서당형식의 교육이 이루어졌는 데, 지도훈장은 최병수였다. 당시 입원환자의 다수는 발병한 후 집을 나와 떠돌아다 니다 수용된 사람들이었기 배움의 기회를 놓친 문맹자가 많았다. 이들에게 문자 교육 은 개인적으로 중요한 실존적 의미를 가진다. 개신교가 이때 1922년에 들어와 소록 도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종교에 귀의하여 성경을 읽고 읽어주며 격리 생활의 위 안과 소록도의 사회성을 체득해 간다. 문해는 소록도 생활의 시작이자 시혜였다. 개인적으로 학습하던 전통 서당 수준의 교육은 제2대 하나이젠키치 원장1)이 부임 하면서 근대교육으로 바뀐다. 신교육을 받은 환자들이 입원하자, 1923년 3월 27일, 환자 중 학식 있는 사람들을 선정하여 교육을 전담하게 하였고, 1927년에는 남-북병 사2)에서 일반보통학교 교과서를 사용하는 3년제 간이교육을 실시한다. 당시 교원으 로는 이동현, 박기순, 박우석이었고, 1929년에는 학생 수가 187명에 달하였다. 그러 나 환자들의 교육에 적극적이었던 하나이 원장의 갑작스런 순직은 큰 타격이었다. 한 편, 이 무렵 교사들의 퇴원과 개인사정 등으로 간이교육은 중단된다. 소록도자혜의원에서 보편적 교육은 야자와 원장 부임 후 재개된다. 교육을 위해 고 이데 토모하루(小出朋治) 목사와 일본 요양소에서 파견된 미츠이 테루이치(三井輝一) 가 중심이 되어 구북리 신사 건물에 임시교사를 마련하고 1930년 4월 10일 보통교 육형태의 ‘학원(學園)3)’을 개설한다. 이 학원은 남녀공학 6년제로 40세까지 입학이 가능했다. 이때 교장은 일본인 환자였던 고지마(小島), 교원은 미츠이데루이치(三井輝 一), 강갑수(姜甲洙), 조칠수(趙七洙), 정승길(鄭勝吉), 윤춘택(尹春澤), 오정술(吳正 述), 류유순(柳有順), 정영환(鄭永煥)등이었다. 이후 1934년 신생리 치료실을 거쳐 1935년에 공회당 앞뜰에 새로운 교사를 신축하면서 학생 수가 200여 명에 달하였고, 1936년 봄에 배출된 제1회 졸업생은 4명이었다.

1) 재임기간 1921.6.23. ~ 1929.10.16. 2) 북병사: 구북리, 남병사: 남생리 3) `更生園學園(갱생원학원)`. 일본 국립다마전생원에도 전생학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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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생원학원 제1회 졸업 기념-

1938년4) 8월에는 기존의 공회당 앞에 있던 협소한 교사로는 늘어나는 학령기 아 동 환자의 교육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중앙운동장 옆 현 교사로 학원 건물을 신축 이전한다. 교장에는 당시 해박한 학식과 인품으로 환자들의 존경을 받던 이경도(李京 道)5)가 부임하여 학교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 시기 초기의 한학교육은 사라 지고, 조선어 말살 등 점차 식민지교육과 원내 질서유지를 위한 교육이 강화되는 시 기였다. 졸업생들은 상급학교 진학이 막혀 있었고 이때부터는 대부분 환자작업이라는 노역을 일반환자와 동일하게 담당하였다. 환자들의 향학열에 대해 병원 입장은 굳이 상급교육은 불필요했다. 기본적인 소통 이 가능하고 다수 환자를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 정도의 교육 수준이었으면 됐다. 섬 내의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으면 충분했다.

4) 일본인 직원 자녀만 다닐 수 있었던 소록도공립심상소학교가 1938년부터 조선인 직원 자녀들에게도 입학 허용 5) 84학살사건 첫 번째 희생자. 발병원인은 도쿄유학시절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일경에 체포이후 발병 이후 소록도갱생원 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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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치료의 혁신적인 설폰제의 효과가 해방 이후 소록도에 전해지면서 실의와 좌절 속에 있던 원생들은 자신의 질병을 극복하고 완쾌 퇴원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상급학교가 없었던 시기 이와 같은 시류에 청소년들은 사회복귀에 앞서 배우기를 열망하여 학식 있는 원생을 찾아가 개인적인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46년 9월 상급학교인 녹산중 학교가 환자들에 의해 설립된다. 질병으로 가족과 떨어져 격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들이 문 예지 `갱생의 별`을 통해 표현되었고 매년 똑같은 소풍 장소인 십자봉, 그 옛날 동환 선배들의 뼈아픈 노역의 장소를 소풍길로 걸으며 확 트인 푸른 바다는 얼마나 청량 감을 주었을까. 소록도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비록 한센병이라는 모진 병마로 고난과 아픔은 컸지만, 소록도 녹산초등학교는 배움의 기회였고 선물이었다. 1988년 5월 1일 녹동 초등학교 녹산분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까지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소록도를 어떻게 기억할까.

-소록도병원 간호사와 녹산초등하굑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