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비 1180px 이상
너비 768px - 1179px
너비 767px 이하

2월 소록도 이야기-제비선창

  • 등록자 :백미영
  • 담당부서 :운영지원팀
  • 전화번호 :061-840-0692
  • 등록일 :2021-02-23

소록도 이야기-특제비선창001 하단참고

제비선창

연보에는 소록도에 모두 23척의 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중 기계선이 6척이고 어선 10척, 종선 3척, 전마선 3척, 자동차운반선이 1 척이다. 배의 이름은 정리되어 있지 않지만 기계선 몇 척은 수리내역으로 확인 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기계선을 수리하는 데에 영선(營繕) 비용이 많이 소요 되어 대상 선박의 이름이 수리내역에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박의 내역이 기재되어 있는 1952년부터 1957년 연보의 수리내역에 등장하 는 선박은 신생호(新生号), 안생호(安生号), 천석호(千石号), 제비호(제비号), 삼 일호(三一号), 갱생호(更生号)이다. 증언에 의하면 이들 대부분의 선박은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되었던 배라고 한다. 배의 이름을 보다 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한자 명칭들 속 유일한 한글 이름, 제비호. 정확한 조성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방 후 제비호에 대한 기록은 1952년부터 보인다. 제비호는 소록도 경비를 목적으로 정기적인 순찰을 돌던 배이다. 새로 만든 배 에는 자동차 엔진을 탑재하여 다른 배들에 비해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제비’이다. 제비호가 접안하던 곳은 썰물에도 물이 찰랑이는 해안의 바위였다. 경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은 덕분에 ‘제비선창’이라는 이 름을 얻었다. 안타깝게도 제비호는 1959년 태풍으로 파손되어 운행이 중단되었다. 그럼에도 제비선창은 유지되었고 지금까지 애틋한 이름으로 남았다. 이유는 이곳을 통해 입도한 많은 환자들이 건너편 녹동의 외진 해변에 자리한 무카이집(迎える(무카 에루: 맞이하다, 마중하다)에서 유래)에서 보냈던 서러운 시절을 증언하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대합실이라고 있었거든. 인제 입원할라고 거기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아. 그게 입원대기실이라.”(임○선, 1949년 입원) “물어물어 대합실이라는 데를 찾아갔어요. 바닷가 외진 곳에 붉은 벽돌로 지어 진 집인데, 출입문과 창문 두 군데는 가마니로 가려져 있었어요.”(김○수, 1953년 입원)

소록도 이야기-특제비선창002 하단참고

일제강점기 초기 모집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주로 구북리를 통해 입도했다. 병사지대에 선창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물이 빠진 바닷가에 배를 대고 내려 해안가에서 인원점검을 하고 신원파악을 한 후 호사 배치를 받는 형태였다. 1930년대 확장공사로 선창이 만들어지면서 입원자는 북관사 도선장과 동생리 선창을 주로 이용하게 되었다. 해방 후 모집 또는 강송에 의한 입원도 마찬가 지로 선창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개인이 소록도를 찾아오거나, 단체라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육로든 해로든 녹동에 도착해 무카이집에서 소록도 배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운이 좋으면 하루 이틀 만에 입도를 할 수 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한 달이 넘게 대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제비선창은 제비선창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부터 당시 환자들을 무동력선으로 싣고 오가던 곳이었다. 1963년 2월 전염병예방법 개정으로 격리규정이 삭제되었다. 우연일까, 소록도 주민들은 같은 해 10월 발동선 건조 결정을 내리고 다음 해인 1964년 6월 ‘구 라호’ 진수식을 갖게 된다. 1964년에 환자들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발동선 구라호는 환자들이 자력으로 만든 만큼 용도도 외출하거나 귀원하는 환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때맞춰 선창 도 보수를 하게 된다.

구라호와 제비선창 보수(1964년 추정)

소록도 이야기-특제비선창003 하단참고

제비선창과 구라호는 직원이나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관사지대의 선창이나 선 박과는 구별되었다. 혹자는 이것이 차별의 정점이라고 하고, 혹자는 기왕의 차 별 속에서 오히려 마음 편한 이동수단이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1984년 교황의 방문을 계기로 제비선창은 폐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창과 그 선창을 누비며 운행했던 구라호, 또 구라호를 타고 바다를 건넜던 수많은 한센인들의 애한은 소록도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여기가 제비선창이야. 우리 손으로 배를 지어서 타고 댕겼제. 우리 병원에서 우리 환자들이.”(남○권, 1956년 입원)

제비선창에 남아 있는 1978년 보수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