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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소록도 이야기-만령당

  • 등록자 :백미영
  • 담당부서 :운영지원팀
  • 전화번호 :061-840-0694
  • 등록일 :2021-12-07

만령당 하단참고01

만령당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육체적인 고통으로 죽음을 표상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 혹은 그 사후세계조차도 없는 삶의 종결이 주는 두려움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만들기도 한다. 죽음을 맞이 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맺었던 모든 관계들과의 이별을 의미한다. 간혹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으나 그렇게 마음을 다지기까지 크고 작은 감정의 기복과 다짐이 얼마나 많았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소록도에는 한센병에 걸리면 “세 번 죽는다”는 말이 있다. 소록도에서 회자되는 ‘세 번의 죽음’은 누구나 맞이하는 육체의 죽음 외에 병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또 다른 죽음들을 의미한다. 그 첫 번째는 ‘발병發病’이다.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그간 맺어 왔던 온갖 관계들과의 단절을 예감하는 ‘사회적 죽음’을 맞는 것이다. 마을의 사람 들로부터 거리두기나 내침을 당하게 되고, 사회의 동료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발병 사실을 숨기기 위해 골방에 갇혀 지내거나, 불이익을 받게 될 가족을 위해 스스로 가족을 떠나기도 한다. 사회로부터 내쳐진 이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하고, 소록도를 찾아오기도 했다. 소록도에 들어오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지만 이들은 결국 ‘사회적 죽음’이라는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다. 두 번째 죽음은 ‘해부解剖’이다. 소록도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은 예외 없이 해부대에 누워야 했다. 신체발부身體髮膚가 부모로부터 온 것이니 언제까지나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유교의 가르침도 있었겠으나, 해부는 의식이 없는 내 신체에 가해질 폭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수용된 환자가 지켜야 할 몇 가지 사항 안에 ‘필요시’ 또는 ‘학술 연구상 필요에 따라’ 해부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당시 환자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행해진 강제 조항이었다. 세 번째 죽음은 해부를 마친 후 ‘화장火葬’하는 것이다. 매장문화가 일반적이던 시 절이었다. 구북리 화장장으로 향하는 시신을 보며 남은 사람들은 봉분도 없이 한 줌 재로 남겨질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을 것이다.

만령당 하단참고02

1937년 완공된 만령당 흑백사진

육체의 죽음과 세 번의 죽음을 마친 소록도 사람들이 마지막 영면에 드는 곳이 만령당이다. 만령당은 신생리 뒷산 중턱에 세워진 납골당이다. 1937년에는 자혜의원 개원(1916년) 이래 사망한 환자 559명 중 인수해 가지 않은 유골이 249위였다. 유골 로 남은 이들을 제사 지낼 장소가 없어 1937년 7월 사은갱생작업으로 부지 공사를 시작하여 석재 운반, 도로 개설 등에 수많은 환자를 동원하여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당시 완성되었던 종루鍾樓의 낙성식을 겸해 처음 위령제를 지낸 것이 10월 15일이었 고, 이후 병원에서는 매년 10월 15일에 합동추모제를 모시고 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 하고 있다. 만령당 내부에는 가로, 세로 20cm 나무상자가 원형 벽을 따라 차곡차곡 쌓여있다. 나무상자의 겉면에는 소록도에서 살았던 마을 이름과 연번, 이름, 생년월일, 사망연 월일, 유골번호 등이 적혀있다. 만령당은 한 많은 생을 살다가 죽어서도 소록도를 벗 어나지 못한 이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2021년 현재 만령당에 모셔진 유골은 모두 11,117위이다.

만령당 내부의 유골함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 2016-1916 SONAMU SOrokdo National MUseum